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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아아악

일베 느낌나는 글인데 일베 안하는 사람사람의 머릿속

찾았다. 박가분 님이 일베 사상을 정리했던 책에서 그들의 사상이 인간의 보편적 혐오 감정을 건든다는 구절을 본 것 같았는데 못찾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김학준 님의 논문을 찾았다.(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134439/1/000000021209.pdf)

일베 사상의 밑에 내재한 혐오의 감정과 논리는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 언론지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프레임이다. 병신같은데 논리적으로 흠을 찾기 힘들다. 그게 어떤 것인지 언어로 풀어내고 싶었는데, 그걸 논문에서 찾았다.

 

요약하자면,

- 일베 또는 노오오오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1등시민이며 보통사람이고 일상에 노오오오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복지를 받는 자들은 특권층이며 산업화의 과실을 무상으로 따먹는 사회악이다.

- 1등시민의 요건은, 국방의 의무와 돈버는 일이며 이것은 무조건적 통과의례다. 때문에 장애인, 여성은 자동으로 2등시민이 된다.

- 타겟을 공격하는 방법은, 어떤 형태로든 복지 또는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만 물고 늘어지면 된다. 그리고 이걸 집요하게 혜택만 받아먹는 특권층, 사회기생충으로 블러핑한다. (혜택을 받았는지 중요하지 않다.)

- 이들은 공감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가해자에 공감한다. 가해자=승자의 논리에 옹호하며 변론한다. (남성 범죄자, 권력형 부패에서 가해자에 감정이입하는 이유인 듯.)

 

가장 재밌있던 부분은, '평범 내러티브'인데 너의 고통은 특별하지 않으니 아프다고 말하지 마라, 나도 고통스럽고 다들 고통스럽다, 원래 인생은 그러하니 그냥 열심히 살아라, 이다. 약자의 객관적 환경은 중요하지 않다. 왜냐면 자신도 그런 환경이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지독한 자기비하이자 타인에 대한 오만방자함이다.

 

아래는 논문 중 '평범 내러티브' 부분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순응의 논리가 ‘누구나’ 고통스럽다는 언표로 요약할 수 있는 ‘평범 내러티브’로 인해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이 ‘평범 내러티브’는 자신의 고통 은 물론이고 타인의 고통까지도 쉽게 일반화시킴으로써 모든 고통을 동질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체들의 인정투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평범 내러티브’는 스스로를 고통스럽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열패자로 위치시킴으로써 타자에 대한 주체화를 결정적으로 좌절시키고, 순응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게 하는 메커니즘인 동시에 일베 이용자들의 고통 역시 평범한 것으로 치환시켜 현대사회가 만들어내는 구조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아래는 논문 결론에 있는 부분에서 깨닮을 준 부분.

일베를 꿰뚫는 감정이 분노나 혐오라기보다는 냉소라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중략) 병역 등 국가와 사회에 어떠한 기여를 하지 않으면서도 민주화(와 산업화)의 과실을 따먹는 ‘무임승차자’이며, 거기에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스러운 ‘착취자’들이다.

일베 이용자들이 ‘산업화’와 ‘근대화’에 열광하는 모습의 일면을 보여준다. 근대 사회발전에 있어서 감정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전근대적”(바바렛, 2007:40)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할 때, 일베 이용자의 ‘합리성’에 대한 자부심은 ‘근대’를 체화한 ‘진정한’ 시민으로 스스로를 주체화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타자’들은 아직 근대화되지 못한 ‘미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베 이용자들이 스스로에 대해 갖는 ‘자부심’ (혹은 ‘일부심’)은 자신이 남성이고, 우파이며, 병역의 의무를 완수 또는 이행할 ‘1등시민’이라는 점에 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식과 이성을 가진 시민적
주체라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베 이용자들이 희생자들의 시신에 환호하고 유가족을 보상금이나 노리는 속물로 이해하며 대통령과 군인, 잠수부를 지지하는 것은 그들의 공감이 희생자보다는 가해자에게 향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이들의 공감대상은 ‘승리자’인 ‘가해자’에게 향한다는 것인데,(중략) 이처럼 일베 이용자들의 ‘전도된 공감’은 스스로의 위치를 패배자로 상정할 수 없는 상상력의 결여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 상상력의 결여는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를 내면화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고 자기계발하는 주체(서동진, 2012)들인 ‘20대’의 멘탈리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 멘탈리티는, 평범함의 내러티브가 강고하게
작동하여 감정관리를 강요하고, 서로의 고통에 대한 무시를 종용하는 동질성에서 비롯된다. 일베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씨스템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주작용’”(엄기호, 같은 책:212)이다.

일베에서의 ‘민주화’가 ‘비추천’이라는 말을 대신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민주화’에 대비되는 ‘산업화’의 대상에 5.18이나 진보세력, 그리고 여성이 포함된다는 의미는 민주화가 일베로 대표되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갔다고 느끼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과 같은 ‘보통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이룩한 산업화의 결실은 여성 등의 전혀 생경한 이들이 민주화의 이름으로 강탈해간 것이다.

각국의 극단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정의로운 선의의 피해자로 여기며, 가해자들은 일종의 엘리트 혹은 특권계층이라고 주장한다. 이때의 가해자들은 각각 재일코리안, 유태인 그리고 전라도 출신 사람들 혹은 여성일텐데, 일베 등에서 이들을 비난하는 주된 논리중 하나가 ‘특권’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략) 민주주의가 심화되며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다양한 조치가 이루어졌고, 이는 결국 착실히 세금을 내는 ‘보통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불안을 원료삼아 폭주하게 되고, 이 불안은 사람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기존의 복지국가체제가 체제 내에 포섭되지 않은 이들에게 베풀었던 다양한 혜택을 ‘역차별’이라는 이유로 거두어들일 것을 요구한다.

일베에서 비난하는 네 가지 소수집단 역시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 담론의 현실적인 수행성이야 차치하더라도 여성부로 대표되는 권익기관이 존재하고, 10년에 걸쳐 호남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으며, 2000년대 이후 진보정당은 원
내에서 조금씩 목소리를 확대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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